<왕의 남자> 진정한 천만영화
<왕의 남자>는 <달마야 놀자>,<황산벌>을 연출했던 이준익 감독의 작품으로 2005년 12월 29일 개봉했습니다. 김태웅의 희곡 '이'가 원작으로 감우성, 이준기, 정진영, 강성연이 주연입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실미도>를 이은 세 번째 천만 영화를 기록했는데 스크린 독점과 신파로 얼룩진 요즘의 천만 영화들 사이에서 '천만 영화 중의 천만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기존의 천만 영화들이 100억 대의 제작비에 비해 40억이라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 인기 배우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점 또한 대중적으로 논란거리가 있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음에도 흥행을 한 것은 그 가치를 증명해 줍니다. 스크린 수가 313개로 매우 적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 주에 115만 명, 개봉 45일 만에 천만을 달성하게 되고 최종 1230만 2831명을 기록합니다. 주인공이었던 이준기는 당시 떠오르는 신예였는데 이 영화 이후 '꽃미남', '이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43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시나리오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신인 남자배우상, 촬영상 등 많은 수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등장인물과 줄거리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는 풍자극과 줄타기를 특기로 하는 남사당패의 광대입니다. 수려한 외모의 공길이 양반들에게 놀잇감이 되자 장생은 이를 못 견디고 함께 한양으로 떠나게 됩니다. 한양에서 육갑(유해진)이 속한 광대패를 만나게 되는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게 되고 그들과 함께 공연을 다니게 됩니다. 광대판에서 당시 왕이었던 연산(정진영)과 그의 애첩인 녹수(강성연)를 비꼬는 광대극을 함께 하게 됩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환관 김처선(장항선)은 왕을 희롱한 죄로 의금부에 끌고 가게 됩니다. 매질을 당하던 장생은 '왕을 웃긴다면 모욕이 아니다'라며 왕 앞에서의 광대극을 제안합니다. 김처선은 연산의 충신으로 그의 강한 애정결핍과 중신들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연산의 마음을 치유해 주고 기를 펴주기 위해 광대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장생의 기지로 연산과 녹수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긴장의 공연 끝에 연산의 마음에 들게 되어 궁궐에 머물며 연산이 원할 때 공연하기를 명받게 됩니다. 또한 연산군은 공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를 본 장생은 예전 생각이 나서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야망과 질투, 피가 난자하던 그 시대, 장생과 공길이 그들이 사는 세상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모습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연산군을 배경으로 한 작품
<왕의 남자>는 각색이 된 희극이지만 실제 있었던 조선의 왕, 연산군 시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연산군은 조선의 10대 국왕이자 폭정으로 폐왕이 된 인물입니다. 연산군은 1476년 11월 23일 성종과 당시 중전 윤씨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난 적장자입니다. 조선 이례로 본처에서 나오게 된 적장자였기에 많은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자에 책봉되었지만 성종은 당시 중전 윤씨를 패악질을 일삼았다는 이유로 폐위하게 되고 2년 뒤 사약을 내리게 됩니다. 세자에게는 비밀로 한 내용이었고 당시 세자인 연산군은 계모의 손에서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19살 성년이 된 연산은 왕에 오르게 됩니다. 초반까지 성종의 업을 잇는 몇가지 업적을 남겼으나 '무모사화' 이후 폭정을 시작하게 되고 강력한 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왕권이 강화되자 그의 본색이 드러나면서 기생을 궁궐에 들이거나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는 등 패륜적인 행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기행으로 탄생된 말이 '흥청망청'이었습니다. 또한 간신 임사홍의 밀고로 연산군은 숨겨져오던 폐비 윤씨사사 사건을 알게 되면서 갑자사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결국은 연산 12년에 반정세력들에 의해 중종반정이 일어나 폐위를 당하게 됩니다. 그의 광기 어린 삶, 외로운 유년 시절, 여색, 녹수와의 관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폐왕 등 파란만장한 그의 삶은 종종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많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왕의 남자>외에도 1961년 <연산군>. 1987년 <연산일기>, 2015년 <간신>등의 영화가 있고 다수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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